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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note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에 시선이 간다. 어디인가에 속하지 못하고 끼어있거나 겉도는 것들 혹은 속하였다가 배제된 것들이 나의 시선을 끈다. 그 시선의 끝은 누구에게인가 소유되었다 버려진 것들이 모인 곳이다. 단지 앞 아무도 가꾸지 않는 방치된 안쪽 뜰에는 주류의 공간에서는 품기 싫고 버리기에는 애매한 것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와있다. 제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지 고 있는 이것들은 선택받아 허락한 공간, 영역 안에 들어오게 되어 소유된 후 쓸모에 의해 혹은 단순한 변심에 의해 울타리 밖에 버려지고 더이상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보인다. 각기 다른 곳에서 존재하여 서로 다른 스타일로 생긴 것들, 주류의 공간에서 비주류의 공간으로 이동된 것 중 제일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직 생생한 식물들이다.

 식물은 플랜테리어로도 불리며 인테리어의 한 소품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반려식물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주고 가까운 부분에 자리하는 애매한 위치에 존재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더이상 나의 영역에 두고 싶지 않을 때의 처리 방법과 비용과 같은 불편한 생각들을 안고 저마다 하나둘 방치된 공간에 자리하게 된 식물들은 본인들만의 인상적인 비주류의 장면들을 만들고 있어 보인다. 자연스럽게 바깥의 공간에서 존재하던 식물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나와 같은 부분을 찾아가며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릴 적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잦은 이사와 전학을 경험했다. 초등학교는 세 곳이나 나올 정도 였는데 그때마다 어떤 무리와 공간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긴장감이 이어졌다. 낯선 ‘나’라는 존재가 잘 자리 잡은 환경에 끼어들었던 것 같았고, 스스로가 그곳에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배제되거나 방치된 이미지들은 나의 시선을 더욱 붙잡는다. 하지만 주위 환경과 관계없이 꿋꿋이 자리하며 아우라를 뿜는 장면들은 굳이 어둡고 슬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빛나는 부분들을 더 찾아낸다. 어디인가에 속하지 못하는 그들속에서 때때로 나의 모습을 찾아내고 위로받는 과정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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